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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길, 남한강길을 가다

* 주목받지 못한 길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 천 년, 2천 년 전의 길과 지금의 길은 얼마나 다를까? 남한강길, 강화 바닷길, 의주길을 통해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물길(강길, 바닷길)과 땅길을 따라가며 그 삶과 길이 담고 있는 이야기, 역사문화유적을 살핀다. 천년의 길이 일제강점기, 한강종합개발 시대에 급변하는 모습, 민초들이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과 그것이 잊히게 된 과정을 알아본다. “(……) 저기 양평의 한여울을 내려가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봤더니, 사공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야. ‘죽기 싫으면 고개 숙여!’ 하고. 어휴! …… 선참은 앞에서 ‘좌! 우! 좌좌 …… 아니 우우!’ 소리를 벅벅 지르고 쫄따구는 뒤에서 정신없이 키를 돌려요. 여울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위..
* 주목받지 못한 길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

천 년, 2천 년 전의 길과 지금의 길은 얼마나 다를까? 남한강길, 강화 바닷길, 의주길을 통해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물길(강길, 바닷길)과 땅길을 따라가며 그 삶과 길이 담고 있는 이야기, 역사문화유적을 살핀다. 천년의 길이 일제강점기, 한강종합개발 시대에 급변하는 모습, 민초들이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과 그것이 잊히게 된 과정을 알아본다.

“(……) 저기 양평의 한여울을 내려가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봤더니, 사공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거야. ‘죽기 싫으면 고개 숙여!’ 하고. 어휴! …… 선참은 앞에서 ‘좌! 우! 좌좌 …… 아니 우우!’ 소리를 벅벅 지르고 쫄따구는 뒤에서 정신없이 키를 돌려요. 여울 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던지, 그래서 선참은 말을 최대한 짧게 하며 소리 질렀던 거야.”
―<모래섬을 돌아 마구 흐르는 막흐르기여울>


■ 출판사 서평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면, 한자로 표기한 행정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은 거의 모두 우리말 땅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한자의 뜻과 소리를 따서 우리말 땅이름을 표기했음에도,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습관 때문에 우리말 땅이름으로 불리는 행정리나 행정동의 이름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2014년 도로명주소로 바뀌면서 일부 우리말 땅이름이 살아났지만, 그래도 한자의 소리로만 읽는 땅이름이 다수를 차지한다. 아마 인류의 문명사에서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로 땅이름의 소리가 순식간에 변한 경우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초유의 사건이 아닌가 한다.
―<흔바위나루, 장호원으로 가는 최단 코스>

일제강점기 이후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유적의 이름을 지을 때, 표기된 한자의 소리에 따라 부른 행정 마을의 이름을 따와서 붙였다. 그것이 역사책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우리말 땅이름이 아주 많이 사라졌다.
―<뱃사공과 떼꾼의 종착지, 서울>


* 주목받지 못한 길을 돌아보다

강이 삶의 터전이었던 뱃사공과 떼꾼들의 진한 흔적이 배어 있는 나루와 여울 등은 유명한 역사 인물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 하나하나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이 늘 불렀던 우리말 땅이름, 힘겹게 오르내리며 사투를 벌였던 여울, 배를 정박해 짐을 싣고 내리며 목을 축이고 까만 밤 잠을 청했던 나루도 우리의 길의 역사다. 그 길을 따라가는 수준 높은 여행을 시작한다.

■ 옛사람들은, 모르는 길을 어떻게 찾아갔을까? 지금처럼 지도를 사용했을까?
옛사람들은 ‘정리표’ 또는 ‘도리표’라는 길 안내 책을 가지고 먼 길을 나섰다. 고개, 나루, 역원, 술막 등을 10~40리의 간격으로 기록해 놓아, 이것만 참조하면 전혀 헤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이런 『정리표』『도리표』에는 7개의 줄기길과 2개의 가지길이 표로 정리돼 있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길, 가장 중요했던 길은 무엇이었을까? 문명과 국가의 탄생에서 비롯된 이런 길 안내 자료는 어떻게 작성되었을까?

■ 충주의 목계에서 강배 저어 가기
남한강 큰 강배가 출발하는 목계나루에서부터 서울의 용산나루, 삼개나루로 배를 저어 가보자. 호수같이 잔잔한 물살과 위험천만한 거친 물살을 두루 헤쳐나가던 옛날 뱃사공들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칡미나루에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다가 남한강에서 가장 무서웠던 한여울에 이르면 잔뜩 긴장해 정신없이 키를 돌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진정 어린 삶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팔당댐과 이포보의 건설로 잠겨버린 나루와 여울들,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로 사라진 당젱이섬의 당젱이나루를 비롯한 나루들을 거쳐 서울의 경계인 광나루, 지금 석촌호수로 남아 있는 송파나루와 삼밭나루에 이른다.
서울 도성 안까지 최단 코스로 건네주는 두뭇개나루, 한남대교의 한강나루, 반포대교의 서빙고나루, 동작대교의 동재기나루, 한강대교의 노들나루를 거쳤고, 세곡을 실은 배는 용산에, 그렇지 않은 경우엔 삼개(지금의 마포)에 정박했다. 삼개는 소금, 젓갈, 각종 해산물을 실은 바닷배까지 모이던 가장 번성한 나루였다.

■ 똥을 싸 놓은 것같이 작은 산?
‘똥뫼’가 발음하기 쉽게 변한 것인 ‘동매산’과 전국적으로 흔히 쓰이는 이름 ‘동산(東山)’의 유래가 바로 이것이다.
한강은 100년 전에도 ‘한강’으로 불렸을까? 복여울나루, 인다락나루, 덕은이나루, 솔미나루, 좀재나루, 개치나루, 창나미나루.... 이처럼 어여쁜 이름을 가진 나루들이 강길, 바닷길처럼 잊히고 있다.
천 년 이상 불렸던 우리말 땅이름이 일제강점기에 정비될 때 한자로 표기되었고, 여기에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는 우리의 습성이 더해져서 우리는 우리말 땅이름을 잊게 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삼개(마포)까지,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 부르고 있으니 안타깝다.
저자 이기봉은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서 태어났다.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공부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9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역사 지리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고대 도시 경주의 탄생』 『지리학 교실』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 『평민 김정호의 꿈』 『조선의 지도 천재들』 『근대를 들어 올린 거인 김정호』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 『슬픈 우리 땅이름』 외에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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